
선산 해미읍성
가족 나들이 장소로 최고예요.

서산 해미읍성은 고려말부터 많은
피해를 준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절제사영을 해미로
옮기기로 하면서 1417년부터 1421년
까지 축성하여,충청도의 전군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영성이예요.
이 읍성에는 병마절도사와 겸영장이
집무하던 동헌을 비롯한 관아와 객사
등의 건물이 꽉 들어차 장관이였다고
전해지며,이순신도 이곳에서 10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어요.
조선시대 말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요.

입구에서 전시되어있는 옛날 무기들이
신기해 보여 몇개 보여 드릴께요.

신기전기화차
조선시대 문종1년 처음 제작되었으며
신기전 100발을 장전한 후 이를
동시 내지는 연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일종의 다연장 로켓으로
여러 전투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어요.
제작당시의 설계도가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병기예요.

천자총통
천자문의 '천ㆍ지 ㆍ현ㆍ황'의 글자를
딴 화포 중 가장 규모가 큰 조선시대의
화약무기로 태종 때부터 제작.
사용되었어요.대장군전을 장착하여
쏘아 임진왜란 때 적함이나 적의 진지를
부수는데 큰 전과를 거둔
위력적인 무기이예요.

검차
수레의 전면에 설치된 방패에 검을
꽃아 만든 무기로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어요.검차는 평지에서 4명의
병력이 운용하였으며,수레 맨 앞에는
날카로운 칼날을 꽃아 공격하였고,
검차의 전면에는 짐승의 얼굴을 한
모양의 방패를 세 겹으로 설치하여
적의 공격을 막도록 하였으며,외면에는
긔면문을 그려 넣어 적의 말을
놀라게 하였어요.

맑은 날씨가 사진의 90%를
도와주네요.

해미읍성 회화나무
수령은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상징은 선비라고 해요.
1790~1880년대에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 있던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다고 해요.

옥사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의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에요.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네요.




작게 핀 수선화도
얼굴을 내밀어 반겨주니
너무 예쁘네요.

동헌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겸영장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예요.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군,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를 겸한 지위였어요.


해미읍성 내아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건물로
동헌이 고을의 공무를 수행하는 곳인데
반해,내아는 살림집이예요.
해미읍성 내아는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2000년 11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어요.




해미읍성 내아의 조경수를 너무나도
잘 꾸며져 있어서
보는 곳마다 시선이 가네요.



주 출입구의 진남문의 2층에서
본 해미읍성 전경
가족 나들이 나와서 연도 날리고
호떡도 먹고,아이들의 뛰어노는
모습이 흐뭇해 지네요.
해미읍성은 주차비 무료인데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요.
입장료도 없어서 더욱 좋아요.
